[절삭유 스크랩] 아무도 안 알려준' 분무기 '무서운' 문구

관리자
2021-01-22

아무도 안 알려준, 분무기의 '무서운' 문구

[불법파견 위장취업 보고서3] 산업재해, 직업병 위험 속에서 일하는 파견 노동자

16.05.08 20:24ㅣ글:선대식ㅣ편집:이준호



한 공장에 위장취업해, LG전자의 최신형 스마트폰 G5의 몸체를 공가하는 공작기계를 다뤘다.



태어나서 처음 공작기계 앞에 섰다. 지난 10년 동안 노트북과 취재수첩에 길든 몸은 뻣뻣하게 굳었다. 


선임자가 알려준 대로, LG전자의 최신 스마트폰 G5 몸체 일부를 공작기계 속 틀에 넣었다. 문을 닫고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날카로운 절삭공구가 몸체를 가공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마찰을 줄이고 깔끔하게 가공될 수 있도록 절삭유가 쏟아져 나왔다. 


가공은 5분가량 이어졌다. 그 사이 또 다른 공작기계를 작동시킨다. 그렇게 4대의 공작기계를 다뤘다. 쉴 틈이 없었다. 


가공된 몸체를 꺼내 압축공기 분사기로 절삭유를 날린 후 통에 담는 과정에서 절삭유가 목장갑을 낀 손에 묻었다. 몇


 번을 작업하니 목장갑이 절삭유에 절었고, 내 손에는 절삭유가 흥건했다. 푸른 빛깔의 절삭유에는 역한 냄새가 났다. 


전날 파견회사에서 "냄새가 많이 난다"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창고 같은 조립식 공장에는 환풍기가 없었다. 


순간 올해 1, 2월에 경기도 부천과 인천에서 파견노동자들이 공작기계를 작동하다 메틸 알코올(메탄올)에 중독돼 시력을 잃었다는 뉴스가 머리를 스쳤다. 


이들 모두 삼성전자·LG전자의 최신형 스마트폰 부품을 가공하던 회사의 파견노동자였다. 나와 사정이 비슷했다.


집에 있는 돌잡이 아이가 떠오르자, 몸이 순식간에 딱딱해졌다. 그 자리에서 장갑을 벗어던졌다.


누구도 절삭유의 정체를 얘기해주지 않았다. 우선 선임자에게 고무장갑이 없냐고 물었다. 그가 전해준 것은 주방용 비닐장갑이었다. 


목장갑과 비닐장갑을 손에 끼고 다시 작업했다. 얼마 안 가 비닐장갑은 쭈글쭈글해졌다. 그날 비닐장갑을 몇 번이나 바꿔 꼈는지 모른다. 


이후 위장취업에 도움을 준 이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절삭유는 유독물질이 아니라고 했다. 그렇지만, 비닐장갑을 끼고 작업하면서 꺼림칙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이곳 공장에서 일한 첫날, 함께 온 젊은 남성 파견노동자 한 명이 사라졌다. 관리자들은 "도망간 것 같다"고 했다. 


공작기계를 작동하는 일은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다. 작업 환경 때문에 일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함께 일한 다른 파견노동자들도 절삭유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불만이 터져 나왔고 공장에서는 이튿날 800원짜리 얇은 1회용 고무장갑을 나눠줬다. 


파견노동자에게 불행은 멀리 있지 않다


내가 시력을 잃지 않았다고, 불행은 나를 비켜갔다고 다행이라고 여겨야할까. 


가습기와 공기청정기 등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일할 때였다. 하루는 관리자가 내게 가전제품의 겉면을 깨끗하게 닦는 일을 맡겼다. 


투명한 액체가 담긴 분무기와 헝겊을 줬다. 알코올 냄새가 났다. 가전제품 겉면에는 스티커 자국이 남아있어서 어지간해서는 깨끗하게 닦기 힘들었다. 


그럴수록 분무기의 손잡이를 힘껏 눌렀다. 


조금 뒤, 분무기에 쓰인 문구를 보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메틸 알코올 – 유해물질'




소형 가전제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메틸 알코올-유해물질'이라고 쓰인 분무기를 보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파견노동자들의 시력을 빼앗은 바로 그 화학물질이다. 


분무기에는 '흡입 : 필요시 인공호흡', '피부접촉 : 완전히 제거될 때까지 물로 세척', '눈 접촉 : 즉시 씻을 것', '섭취 : 의식이 있고 경련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구토를 야기할 것'이라는 무시무시한 문구가 쓰여 있었다.


당시는 시력을 잃은 파견노동자로 인해, 화학물질 산업재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다. 


하지만 회사는 내가 사용하는 물질이 메탄올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당연히 마스크, 고글, 화학물질용 안전장갑과 같은 개인보호장비도 지급되지 않았다. 눈·코·입 등 신체는 고스란히 메탄올에 노출됐다.


얼마 뒤, 나는 다른 업무를 배정받고 맞은 편 라인으로 옮겼다. 내 자리에는 내 옆에 있던 재중 교포가 차지했다. 


그는 연신 분무기 손잡이를 힘껏 눌러 가전제품을 닦았다. 


그나마 내가 있는 라인은 나은 편이었다. 밀폐된 좁은 공간에서 품질 검사를 하는 라인은 더욱 열악했다. 


그곳에서는 지독한 메탄올 냄새가 났다. 나야 잠시 위장취업을 했지만, 오랫동안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은 매일 메탄올을 흡입했을 것이다.


안전보건공단은 메탄올 중독사고가 발생하자, 화학물질 안전보건관리 십계명을 발표했다. 십계명 중에서 내가 당장 확인할 수 있는 것은 6가지였다. 


이중에 실내작업장에서의 흡연·취사 금지를 제외하면,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비치, 노동자에 대한 교육 실시, 화학물질 발산원 밀폐, 개인보호구 지급, 세척시설 설치 등은 없었다. 


파견노동자들은 지금 이순간에도 산업재해와 직업병의 위험 속에서 일하고 있다. 


노동 환경은 정말 좋아지고 있는 것일까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을 두 달 앞두고 전국이 들떠 있던 그해 7월 2일 15살 소년이 병원에서 숨을 거뒀다. 


그의 이름은 문송면. 중학교 졸업반이었던 1987년 12월, 밤에 공부를 시켜준다는 서울 영등포 온도계 제조공장에 취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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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도 안 돼 몸이 아파 휴직했다. 설 때 내려간 고향에서 눈이 뒤집힌 채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졌다. 수은 중독 때문이었다.


문송면은 끝내 고등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그로부터 20일 뒤 정부가 관리하던 회사인 원진레이온의 노동자들이 독성물질인 이황화탄소에 중독돼 팔다리가 마비되거나 목숨을 잃은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이후 가족들은 긴 싸움 끝에 직업병 환자들을 위한 재단과 병원을 설립했고, 이는 산업재해와 직업병을 줄이려는 사회적인 노력으로 이어졌다.


문송면이 죽고, 원진레이온의 지옥이 세상에 알려진 지 28년. 여전히 공장에서는 눈이 멀고, 다치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파견노동자들은 산업재해와 직업병에 무방비상태로 노출돼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가운데 산업재해 사망률 1위다. 

산업재해는 언제쯤 이 땅의 공장에서 사라질 수 있을까.


송경동 시인은 2013년 문송면 사망 25주기를 맞아 쓴 시 '아직은 말을 할 수 있는 나에게'에서 "당신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해졌다고 공치사를 해야 하나"라면서 아직도 열악한 노동 현실을 자조했다.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은 28살의 여성 파견노동자는 뇌손상으로 인지·언어장애도 겪고 있다. 


그가 다니던 회사는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메탄올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거짓 보고했고, 노동부는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다. 


그의 부모는 기초생활수급자다.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파견노동자로 일한 대가는 끔찍한 산업재해였다. 


산업재해의 휴업·장해급여를 산정할 때 기초가 되는 것은 그가 받은 평균임금이다. 최저임금을 받은 파견노동자는 가장 낮은 휴업·장해급여를 받는다. 

우리 사회는 그에게 어떤 말로 위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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